제레미의 OTT NEWS
넷플릭스와 TV의 재발견 본문
2021년에도 단연 국내 미디어 산업의 화두는 ‘OTT 경쟁’ 이다. 국내에서 넷플릭스의 성공 이유는 진단하는 여러 시각이 존재한다. 큰 틀로 보면 국내 콘텐츠 생태계 장악을 통한 콘텐츠 파워 강화, 작은 틀로 보면 통신사 제휴와 압도적인 서비스 UX의 편리함 및 추천 기술의 강점 등을 손꼽을 수 있다.
한국 진출 후 2년쯤 되던 2018년 11월 넷플릭스는 국내 통신사 중 3위 사업자인 LG U+와 제휴를 선언하고 IPTV를 통해 서비스를 개시했다. ‘약한 고리 제휴 전략’ 즉, 해외 진출 시 1위 사업자가 아닌 2위 또는 3위 사업자와 제휴를 시작해 시장을 공략하는 그들의 전략적 문법을 따랐다.
넷플릭스, 통신사 제휴로 TV 장악력을 높이다
그렇다면 LG U+와의 제휴가 미친 영향은 무엇일까? 넷플릭스 제휴를 통해 LG가 얻게 된 사업적 이득과 손실은 별개로 하더라도, 제휴 이후 넷플릭스는 시장 점유율을 40% (국내 토종 OTT인 웨이브와 티빙은 각각 21%, 14%)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그런데 아래 표를 보자. 2020년 11월에 발표 자료다.
모바일 데이터 분석 플랫폼 앱애니에 따르면, 상위 10개 앱의 사용자당 평균 이용 시간 순위 중 웨이브가 넷플릭스보다 1단계 높은 4위를 차지했다. 이 자료를 토대로, 국내 토종 OTT들의 영향력이 낮지 않음을 반증하는 기사가 쏟아졌다.
하지만 월간 이용자수가 1.5배 높은 넷플릭스가 시간 점유 측면에서 웨이브에게뒤쳐진다는 건 다소 이상하지 않은가? 이 데이터에는 TV를 통한 이용 수치가 합산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넷플릭스나 국내 토종OTT 모두 TV스크린 이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국내 OTT서비스를 TV스크린으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기본형 가격에다 추가 비용 지불이 필요하다. 그리고 스마트TV 나 크롬캐스트 연결 등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반면, 넷플릭스는 LG, KT 등 통신사가 제공하는 IPTV를 통한 이용이 가능해 훨씬 접근성이 좋은 편이다.
넷플릭스를 TV 디바이스로 시청하는 비중에 대한 국내 데이터는 존재하지 않지만 글로벌 수준으로 보면 이미 70%를 넘었다. 추정컨대 국내 시장도 60%를 넘었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그 판단은 아래와 같은 2가지 이유에 근거한다.
먼저 시청패턴의 변화다. 넷플릭스의 국내 진출 시점인 2016년 초부터 통신사와의 제휴가 성사된 2018년 말까지 넷플릭스를 시청하는 주된 방식은 ‘모바일’ 단말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이 시점, 미국 시장은 정 반대로 TV가 넷플릭스의 주요 시청 디바이스였다. 스마트TV와 로쿠(Roku), 아마존 Fire TV등 TV연결 셋톱박스의 보급이 꾸준하게 증가했다.
넷플릭스가 한국에 진출한 것은 2016년. 삼성, LG는 이 시점부터 생산되는 스마트TV에는 넷플릭스를 모두 포함시켰다. 그리고 2018년 말부터 LG IPTV의 셋톱박스를 통한 이용도 가능해졌다. 2016년 이후 국내 한해 스마트TV의 판매량은 80만~85만대로 지속 성장중이다. 2018년 통신사 제휴 이후 스마트TV는 물론, LG와 KT의 셋톱박스까지 포함하면 800만~1,000만대 이상의 TV에서 넷플릭스를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글로벌 하게 보면 이용자들은 모바일로 넷플릭스를 가입할 때 PC 혹은 스마트폰으로 손쉽게 접속하고 가입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주력 시청 단말은 TV가 된다.(하단 그래픽 참조) 한국도 통신사 제휴로 유사 패턴이 만들어졌다.
오리지널 콘텐츠로 인해 거실 TV로 모이는 이용자들
두번째로 TV가 주력 단말로 점차 등장한 이유는 콘텐츠에 있다. 통신사 제휴 직후인 2019년부터 국내의 빅 콘텐츠 기업인 CJ, JTBC의 대작 드라마들이 제공되기 시작했고, 독점 오리지널인 킹덤, 인간수업, 스위트홈이 뒤를 이었다.
장르물 경향이 강한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콘텐츠들은 대체로 제작비를 많이 쏟아부은 고품질(High Quality) 콘텐츠가 많다. TV로 시청할 때 대화면을 통해 고화질과 몰입감을 제대로 맛볼 수 있다. “모바일로 스위트홈을 보면 괴물들의 디테일이 살지 못하니 반드시 TV로 보아야 한다”는 유투버들의 리뷰는 이런 현상을 잘 드러내는 증언이다. 아울러 팬데믹과 함께 ‘집콕’ 상황이 늘면서 거실에 모인 가족들이 넷플릭스의 오리지널을 몰아보기(Binge Viewing) 하는 경향도 꽤 늘었다.
TV스크린으로 진출하지 못한 국내 토종 OTT
팬데믹 과정에서 국내 토종 OTT의 성장폭이 넷플릭스를 따라가지 못한 점은 바로 이 ‘TV의 장악력’ 차이에 있다고 본다. 그런데 토종OTT는 왜 TV스크린 진입을 본격화 하지 못했을까?
‘비즈니스 모델의 충돌’에 그 원인이 있다는 게 필자의 해석이다. 토종OTT의 뒷 배는 방송국들인데 이들은 IPTV에서 채널입점료와 VOD 사업이 수익원이다. 특히 VOD 사업의 공급 가격은 OTT 가격보다 높다. 이런 점에서 과감하게 넷플릭스처럼 TV 앱으로 IPTV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현재의 수익을 미래의 가치와 바꾸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진 상황이라고 하겠다.
방송국들은 동일한 드라마를 IPTV에는 채널과 VOD로 제공하고 자사의 OTT에는 모바일 중심으로 제공하면서 그 중에서 일부 콘텐츠를 다시 넷플릭스에도 제공하고 있다. 이용자 입장에서는 일부이지만, 넷플릭스를 통해 국내 콘텐츠를 TV로 시청하는게 가능한 상황이다. 방송사 입장에선 기존의 수익도 지키고 새로운 수익도 차지하고 싶겠지만 결과적으로는 넷플릭스에 ‘TV 파워’를 안겨주고 있는 셈이다.
높아지는 넷플릭스의 TV 장악력과 IPTV
팬데믹 이후 댁내 거주 시간이 늘어나면서 TV 자체의 이용 시간은 넷플릭스 등 OTT 이외에도 IPTV의 이용시간도 동반 상승하였다. 하지만 이는 실시간TV의 시청량이 주도한 것이고 VOD 측면을 보자면 극장 개봉작의 급격한 감소로 넷플릭스의 성장세를 밑도는 수준이다.
공교롭게도 12월 말에 발표된 IPTV 만족도 조사에서 LG 1위, KT 2위, 3위 SK가 순위를 보이자 일부 언론들은 넷플릭스 제공 효과로 분석 하고 있다. (기사보기)
넷플릭스 제공 여부가 만족도를 가늠하는 기준치라고 하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LG IPTV가 가장 먼저 제휴한 효과를 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현재 IPTV 가입자는 여전히 성장하고 있으나 2018년 이후 그 성장세가 이전에 비해 다소 둔화되고 있는데 IPTV 3사 중 그나마 LG의 둔화세가 가장 덜하다. 넷플릭스 효과가 간접적으로 증명된 셈이다.
IPTV 사들의 OTT 제휴가 가입자의 성장에 간접적 영향을 미쳤다고 하지만 플랫폼으로서의 수익성에는 그리 좋은 친구가 아니다.
IPTV의 홈 화면에는 자사가 제공하는 VOD 서비스와 넷플릭스가 공존한다. 홈화면을 여는 리모컨에는 넷플릭스 버튼도 동시에 제공된다. 1만2,000원을 지불한 넷플릭스 가입자들에게 IPTV가 제공하는 VOD는, 건별로 또 다시 돈을 내야하는 상업적 공간으로 인식된다. 극장을 보증수표로 하는 영화들이 팬데믹 이후 급격히 줄어들면서 IPTV 상점의 장점인 ‘빠른 극장 개봉작’ 도 빛을 잃었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구작 영화 아울렛 정도가 수익력을 지탱해주고 있다.
넷플릭스가 IPTV의 가입자 획득에 영향을 미치지만 넷플릭스 가입자가 증가할 수록 플랫폼 수익은 늘지 않는다는 의미다.
다른 두 통신사와 달리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가 없다는 점을 역으로 기회 측면에서 접근, 그와 유사한 영화/드라마 월정액 서비스 ‘오션’을 출시했고 나름 유의미한 가입자를 모아가고 있다. 팬데믹 효과도 한몫 했지만 넷플릭스에 없는 ‘1년 이내 신작영화’와 중국드라마 등을 집중해서 제공한 것이 오션의 장점이다. (몰론 SK브로드밴드의 가입자들은 넷플릭스 제공도 원하고 있다)
넷플릭스는 국내 통신사의 제휴과정에서 자사의 요구사항을 대부분 관철시키는 등 우월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 (넷플릭스는 앱의 위치와 리모콘 키 배열, 마케팅 수위 등에 대해 요청사항이 있었다고 한다) 특히 IPTV 홈화면에서 넷플릭스 앱이 오픈되더라도 이용자들이 어떤 콘텐츠를 시청하는지, 넷플릭스는 데이터를 통신사에게 제공하지 않을 뿐더러 IPTV의 영상 콘텐츠와 넷플릭스 콘텐츠는 같은 검색 DB로 제공되지도 않는다.
그럼 미국은 어떨까?
미국의 통신사 컴캐스트는 넷플릭스의 콘텐츠 목록을 컴캐스트의 다른 콘텐츠들과 통합하여 검색 DB에 제공하고 있다. 만일 인기 시리즈물인 ‘프렌즈’ 가 넷플릭스와 컴캐스트 VOD에 모두 제공되고 있다면 고객은 검색을 통해 2개의 서비스 중에서 선택하여 이용할 수 있다. 고객들 입장에서 넷플릭스와 IPTV 플랫폼이 제공하는 콘텐츠를 비교해서 선택할 수 있도록 힘의 균형추가 얼추 맞춰져 있는 것. 이용자 편의성이 제고되었음은 물론, 컴캐스트도 최소한의 수익력 방어가 가능한 셈이다.
TV는 문화와 콘텐츠 그리고 정보를 접하는 통로이고 팬데믹 이후 유저들에게 TV의 가치는 더 높아지고 있다. 여전히 그 가치의 일부를 IPTV가 가지고 있으나 점차 OTT로 그 축이 이동하고 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글로벌 OTT로!
2021년은 디즈니플러스가 국내에 상륙한다. 운동장은 점차 기울어지고 있다. 플랫폼들은 이제 양(Quantity)이 아니라 질(Quality)의 싸움을 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