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레미의 OTT NEWS
2010 IFA 후기–전자 박람회 무용론 본문
IFA가 폐막된지 10일이 흘렀다. IFA는 50주년을 맞이하는 유럽의 대표적인 전시회이다. TV,PC,오디오,생활 가전 등 전통적인 전자 제품과 태블릿과 같은 이머징 디바이스가 전시되는 이 행사에는 전세계의 탑 가전회사들이 몰려온다.
이들이 노리는 것은 지역적으로 유럽 고객의 공략이다. 내년도 신제품을 전시하고 기술 트렌드를 한눈에 볼 수 있어 유럽에 열리는 행사이지만 전세계의 관계자들이 베를린으로 향한다.
이런 전시회들은 유통 딜러들에게 제품을 소개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유통 경로를 확보하는 행사로 시작되었을 것이다.
유통 조직이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망라하여 모두 갖추어진 뒤에는 전자 박람회는 주로 자사의 기술력과 브랜드 파워를 만방에 공표하는 자리로 활용되고 시장의 리더쉽을 유지하는데 활용하는 행사로 변모했다.
쇼잉(showing) 에 가까운 이러한 행사는 전시 공간을 화려하게 꾸미고 새로운 기술을 소개하여 와우(wow) 효과를 노린다.
그런데 최근 박람회 참관객이 점차 줄고 있다고 한다. IFA에 처음 방문한 필자는 미국에서 개최되는 CES 보다 훨씬 크게 느껴지는 전시 공간의 위용에 놀랐다.
그러나 전시장을 다니면서 느끼는 것은 회사 마다 차별화가 없다는 것!
3D는 3년 내내 같은 모습이다. 작년에 CES에서 본 3D와 큰 차이가 없다. 아마도 엔지니어가 아니라면 발견하기 어려운 작은 업그레이드가 있을 뿐.
스마트TV 또한 큰 변화가 없다. 구글TV도 프로토타입을 선 보였을 뿐 리모컨은 만지지도 못하게 한다. 데일리 뉴스로 전달된 소식에는 올림픽 특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세계 TV 판매량은 전년 대비 3% 수준으로 소폭 성장에 그쳤다고 한다.
이렇듯 밋밋함이 그지 없는 제품 변화를 오로지 퍼포먼스와 화려한 전시 디자인으로 커버하려는 박람회의 현장은 구글CEO, ESPN CEO등 거물들의 키노트 연설 정도의 양념을 덧 보태어 그럴듯하게 포장된다. 언론은 연신 신기술의 찬사를 쏟아 내지만 작년 IFA 기사를 꺼내서 비교해보면 큰 변화는 없다.
그나마 삼성전자의 갤럭시탭은 IFA 이전부터 노이즈를 일으켜 IFA 행사장에서 처음 공개되어 화제의 중심이 되었다. 박람회는 신제품이 터져주어야 신이 나는 법인데 50주년 행사로 열린 IFA의 주인공은 갤럭시탭이었다.
출장으로 IFA를 방문한 기자를 포함한 기업인들은 큰 돈을 들여 온 만큼 일단 박람회에 호의적인 입장일 테지만 사실 박람회 무용론이 나올 시대가 되었다고 본다.
CES나 IFA는 3월과 9월 각각 미국과 독일에서 개최된다. 전세계 모든 박람회는 매해 똑 같은 일정으로 열린다. 이것이 문제의 시발이다.
이용자의 기호가 매우 빠르게 변화하고 기업들의 신기술도 긴급하게 움직인다. 1년에 2번 정도 신제품을 발표해도 트렌드를 만들 수 있었던 과거와는 다르다.
이를 가장 잘 활용하는 기업은 단연 애플. 1년에 한번 개최되는 가장 큰 개발자 컨퍼런스 이외에 거의 2개월에 한번씩 미디어 데이등을 개최하여 제품의 업그레이드나 신제품 발표를 한다. CES나 IFA에 참여하지 않고 이들 행사가 개최되기 1-2일전에 따로 발표를 준비하는 애플의 영리함은 잔치를 준비하는 시장 앞에서 미리 떡을 나누어주는 꼴이다.
박람회 무용론의 두번째 근거는, 가전 제품등 각종 디바이스들이 단순히 하드웨어의 기술력 만으로 장점을 설명할 수 없다. 즉, 콘텐츠가 하드웨어와 결합하여 제공되는 총합적 가치를 맛본 이용자들은 겉만 번지르르한 하드웨어의 향연에 그리 만족하질 않는다.
이를 의식한 전시장의 곳곳에는 자사의 제품과 함께하는 콘텐츠 기업들의 로고를 전시해보지만 앵무새처럼 떠들어대는 아바타 영화의 건조한 되감기만 반복될 뿐이다.
아마도 앞으로는 박람회가 콘텐츠나 비즈니스 모델의 복합적 전시장으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IFA에서 발견한 우스운 광경. 1층에는 삼성, 소니, LG등 일류 기업들의 전시장이 마련되어 있다. 그런데 지하로 내려가 보면 애플의 아이폰, 아이패드등 애플 제품의 각종 액세서리와 애플 어플리케이션들이 즐비하게 전시되어 있다. 공간의 밀도 기준으로 보면 1층보다 지하에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다. 1층의 화려한 3D 보다 손으로 만져보고 귀로 들어보는 지하의 싸구려 전시 부스가 더 친근한 탓이다.
사실 CES나 IFA에서 발표되는 제품은 대부분이 프로토타입이다. 이 제품 중 6개월안에 실제 제품으로 양산되는 비율은 얼마나 될까? 발표하고 나면 3-4개월 안에 여지 없이 소비자의 손에 쥐어주는 애플의 치밀함은 고객들의 인내심을 3개월 이내로 좁혀놓았다.
CES, IFA와 같은 빅 이벤트들은 갈수록 ‘먹을 것 없는 요란한 잔칫상’ 으로 변하고 있다. 박람회가 아니더라도 정보를 공개하는 채널이 엄청나게 증가하였고 이를 통한 소비자의 눈높이도 하늘을 찌른다. 이를 활용하는 기업들의 마케팅 전략안에 더 이상 박람회는 핵심 채널이 아니다. 그저 특정 시기 마다 이슈를 만들어야 하는 언론의 조급함을 풀어주는 수준이 되어 가고 있다.
박람회에 참석하기 위해 출장길에 오르는 사람들도 신제품의 향연에 참석한다고 들뜨기 보다는 그 제품들을 둘러싼 생태계에 몸담은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비즈니스 출장이 되어야 의미가 있다.
디지털의 빠른 변화는 그 변화를 알리고자 50년전에 만든 마케팅 채널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아마도 어딘가에선 새로운 전시 마케팅이 준비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하드웨어와 콘텐츠의 하이브리드한 결합 방식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