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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페이스북은 절대 선인가?<소유의 종말>해법

jeremy797 2010. 5. 10. 00:43

트위터와 페이스북이 열풍이라고 하지만 한국에서는 폭발적 상태는 아니다.  그러나 이용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소셜네트워킹은 절대적 지지 속에 IT의 지형을 바꾸는 패러다임으로 이해되고 있다.  스마트폰은 소셜네트워킹의 전파 속도에 불을 붙이는 매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어 글로벌 IT는 소셜네트워킹의 밴드웨건(Bandwagon effect) 에 빠져있다.

 

소셜네트워킹이 인터넷 세계를 지배할 아젠다라는 점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트위터나 페이스북이 무한대의 편익을 제공하는 절대 선으로 불러야 마땅한가
?  한국에 뒤늦게 이식되고 있는 소셜네트워킹은 여과없이 흡수되고 하루빨리 만들어야 할 구원의 메신저인가?

 

2001년에 쓰여진 세계적 석학 제레미 러프킨의 저서 <소유의 종말>시장은 네트워크에 자리를 내주며 소유는 접속으로 바뀌는 추세라고 예견한다.  10년 후인 지금 그의 예견은 소셜네트워킹에 대한 철학적 근거와 닿아있다.

 

소유에서 접속으로 이동이 일어나고 지적 재산이 부상하고 인간 관계가 점점 상품화되는 접속의 시대는 자본주의 발전 단계 중 하나라는 주장은 대단히 설득적이다.
 

.. 거대 미디어 복합 기업들과 이들 산하의 콘텐츠 제공자들은 수억 명의 사람들이 앞으로 어떤 조건과 약정에 따라 서로에게 접속할 수 있는 지를 결정하는 <문지기> 역할을 한다 (중략) 그것은 새로운 종류의 전지구적 독점이다 이라는 지적은 지금의 소셜네트워킹의 글로벌 트렌드를 설명하고 있다.  

 

세계가 열광하는 소셜네트워킹도 결국은 상업적 공간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새로운 시대의 아킬레스 건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상업적으로 규정되는 관계와 전자로 매개되는 네트워크가 전통적 관계와 공동체를 대체할 수 있다는 그릇된 믿음일 것이다. 


이 얼마나 통렬할 예견인가?  소셜네트워킹이라는 상품화된 관계도 결국은 도구적 이라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가족, 친구, 동료들간의 소통 창구로 쓰여지길 바랬던 140자 공간 트위터는 슬기로운 이용자들의 지적 활동과 공유로 인해 지진 상황을 전달하고 시위를 조직하고 위기 상황을 전파하는 언론의 기능을 수행한다.  마치 트위터의 CEO가 인간의 절대 선을 느끼게 해준 위대한 발견이라는 찬사가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소유의 종말에서는 접속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묻고 있다.  인간의 전통적 관계는 친족, 민족, 지리, 공유하는 정서로부터 탄생하는데 이것은 서로에 대한 책임감과 운명 공동체라는 인식으로 결속 되어 있다는 것이다.  접속이나 (소셜) 네트워크도 사회적 신뢰감과 공감대가 형성된 강력한 사회 공동체가 먼저 존재하고 나서 부수적으로 나타나는 파생물 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 소셜 네트워킹은 사회 공동체와 함께 균형있게 발전할 수 있어야 상업 공간과 문화가 절묘하게 결합될 수 있는 해법을 제시하는것과도 같다. 

이것은 마치 왜 한국과 미국의 소셜네트워킹 서비스의 발전 속도가 다른지를 설명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

모든 나라는 시장이라고 하는 제1부문과 정부라고 하는 제2부문, 문화라는 제 3부분을 당연시 한다 (중략) 3부문은 사람들이 쉬고 놀고 동무를 찾고 친구를 만들고 인생과 자연의 기쁨을 맛보는 곳이기도 하다.  간단히 말해서 제 3부문은 사람들이 인생의 길잡이로서 공유하는 가치를 만들고 닦는 곳이다.  문화가 풍성하게 유지되는 놀이의 장이다

 

이 책에서는 사회 공동체를 상징하는 제 3부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미국에는 114개가 넘는 비영리 제3부문 조직이 있다. (중략) 미국 노동인구의 7퍼센트에 가까이가 제3부분에서 일하고 있다 는 나라별 현황을 밝히며 사회 공동체의 성숙도가 접속의 시대를 탄탄하게 만드는 자양분임을 역설한다.

 

이는 마치 트위터를 지속적으로 비영리 활동에 접목시키는 다양한 사회적 활동이 우연이 아님을 지적하고 있는것과 같다. 

 

미국에 비해 사회적 공동체의 토대가 허약하고 폐쇄적인 지인 네트워킹이 발달한 한국 사회에서의 소셜네트워킹이란 발전 속도가 더디거나 허약한 상업적 공간으로 전락할 수도 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접속의 시대는 인간 경험을 문화 생산의 재료로 활용하기 때문에 인간 문화와 체험의 조각조각을 닥치는 대로 짜집기 하여 제공할 때 우물은 독으로 오염될 위험성이 있다는 경고는 섬뜩할 정도로 통렬하다.

 

한국에서 발전이 더디다고 생각한다면 문화적 측면에서 사회를 고찰하고 수용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최근 인문학과 기술의 결합을 강조한 스티브잡스의 철학을 벤치마킹하자는 움직임이 많다.  의미있는 시도이다.   그러나 기업의 입장에서 이것은 참으로 어려운 작업이다.  최근에 포스팅 된 카이스트 한상기 교수님의 <모바일 시대, 국내 포털의 방향> 이라도 귀를 여는 기업이 있다면 좋은 일이다.

 

소셜네트워킹은 자본주의의 발전 과정에 존재하는 상업 공간이다.  그러나 전파되는 속도가 빠르고 한번에 집단을 공감하게 할 수 있는 위력이 강하기 때문에 우리는 페이스북이라는 기업이 이용자들의 개인 정보를 활용하여 만들어내는 비즈니스 공간에 크게 환호한다.  심지어 소셜네트워킹을 가스나 전기와 같은 유틸리티(utility)로 불러야 한다는 페이스북의 자신감 또는 오만 앞에 개인정보 오용에 대한 지적은 묻힐 수 밖에 없다.

 

일각의 찬사는 긍정적 신호를 전파함으로써 글로벌 트렌드를 사업의 기회로 만든다는 점에서 필요한 일이다.  이와 함께 연유를 되짚고 그것 다음에 나올 새로운 예측을 하기 위해선 다양한 담론이 필요하다 

10
년전 쓰여진 이 책에서는 네트워킹 시대에 이용자들이 공감 능력이 어떻게 변화할 수 있을지 걱정하고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것이 10년 전의 고민이었다면 다소 상징적 표현이었다고 해도 깊은 사유가 아니면 불가능한 고민이다.

 

2010년의 삼분의일은 스마트폰 열풍으로 훌쩍 지나갔다.  나머지 삼분의일은 페이스북이 차지할지도 모르겠다.  다양한 담론이 필요할 때다.

 

<소유의 종말> 375페이지에 실마리가 있다.

인터넷에서 해당 정보를 클릭하는 것이 배움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