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바이러스를 보는 사람들 누구나 강마에로 열연하는 김명민의 연기에 박수를 보낸다. 회를 거듭할수록 강마에 라는 인물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리더쉽이 깊이를 더해간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겪어내고 철저히 노력만으로 마에스트로의 경지에 오른 강마에는 외골수적 기질과 음악에 대한 순수한 사랑을 바탕으로 세상과의 소통에는 정상적 질서는 아니다. 그런 그가 작은 결점들을 안고 사는 변방의 음악인들의 리더로 시향악단을 이끈다.

 

그가 퍼붓는 독설에 모멸감으로 치를 떨면서도 그의 곁을 떠나지 않는 부족한 단원들을 이끄는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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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극중 초반 어느 부분에선가 강마에가 던진 건들지 마십시오. 이 단원들은 내 단원들입니다라고 하는 갑작스런 패밀리 의식이나 범접하기 힘든 그만이 간직한 음악 세계에 대한 경외감이나 존경심!

극 중반에는 단원들을 끝까지 챙기기 위해 시장과 담판짓고 단원들을 순간적으로 파면시키면서도 끝까지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 속깊은 애정!

 

이런 이유로 우리가 흔히 예술인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범상치 않는 인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강마에라는 인물의 리더쉽은 보는 이로 하여름 웬지 모를 쾌감을 준다.

 

이순재가 그에게 던지는 뼈있는 말, “당신은 죽은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음악과 지내고 있다, 당신도 음악 속에서 무서움에 떨고 있지 않느냐 “ (정확한 대사는 아님) 는 대사에 강마에는 극도의 외로움에 빠진다. 

 

다면성을 지닌 강마에가 상징하는 리더쉽은 결국 극을 해피엔딩으로 몰아갈 것이다.  그의 뚝심과 양면적인 애증의 리더쉽으로 단원들의 신분이 바뀔것이고 관객들은 박수를 보낼것이다.

 

엉뚱한 상상하나 해보자. 그가 현실세계로 돌아온다면 그 리더쉽은 어떤 평가를 받을까?  특히, 조직사회의 질서가 분명한 기업에서 그의 리더쉽은 통할 수 있을까?

 

결론은 간단치 않다.  한국의 리더쉽은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한다.  그것도 단기적 결과! 강마에의 리더쉽은 기승전결의 우여곡절을 모두 겪고 난 뒤에야 인정되고 박수받는 그런 리더쉽이다.  아마도 한국의 기업문화라면 첫 공연을 마치고 진작에 짤리지 않았을까?

 

거기다가 한국의 리더쉽은 절대 구성원들을 잘 챙기는 것을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  주변의 평가와 상부와의 교감이 중요하고 평판이 우선이다.  강마에는 일관되게 까칠하다.  그런 리더쉽은 적을 만들기 십상이고 오래지 않아 모함과 악평으로 옷을 벗고 말았을것이다.

 

더욱이 다혈질, 외골수가 쏟아내는 온갖 인격 모독적인 독설을 받아들일 속 넓은 조직 구성원들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천재적 우수성과 특정 분야에 순수한 열정을 존경심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왕따와 시샘으로 내 모는 현실이 우리 사회의 조직 문화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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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마에 리더쉽은 타협하지 않고 정도를 걸으며 꿋꿋이 자신의 진실을 은근하게 밀어부치는 속 깊은 열정이다. 

사람들은 드라마를 보면서 우리 주변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이런 모습에 갈채를 보낸다.  한없는 부드러움과 지성을 겸비한 리더쉽이나 강마에 처럼 정반대의 리더쉽 모두에게 관대하다. 
아마도 그것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경계선이 애매한 어느 지점에서 별로 배울 것 없다고 느껴지는 현실 순응적 리더쉽만을 경험하는 현실세계의 염증 때문이 아닐까.

 

강마에의 리더쉽 까지도 포용하는 사회의 다양성이 보편화되는 날이 오면 드라마에선 정반대로 우유부단하고 한없이 약해빠진 보잘것없는 리더쉽이 박수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현실 사회에 존재하는 강마에 이 인정 받는 그날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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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jeremy797
제레미는 '업'으로는 미디어로 먹고살며 IT의 미래를 고민한다. '생'으로는 여행, 운동, 걷기, 캠핑, 커피, 독서 등등을 즐긴다. 제레미의 '생각저장소' 는 '업'에 관한 고민과 소소한 일상을 모두 담고있다. jeremy797@gmail.com / twitter : @comi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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